019 산책-조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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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0-1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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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동 둘레길을
구부러진 모양따라 걷다보면
햇살도, 바람도,
나무와 나무 사이로 휘어진다

울퉁한 길과 불퉁한 둔덕에
바람의 결을 따라 일렁이며
수묵의 음영으로 스미는 햇살은
처서즈음 때 아닌 봄 아지랑이로
나그네를 희롱하고,
구부러져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은
언제나 그 너머에
비경을 감춘다

스쳐 지나는 바람에
계절을 잊은 채로 한굽이 돌고
땀 식으며 서늘해진 맘
햇살따라 또 한굽이 돌고
이제나 보이려나
돌고 돌다가
세상사 시름이 새어나와
그림자 길어지면
지는 해와 함께
휘어진 길에 남겨두고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