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시인-조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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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8-16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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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머리로 쓰는게 아니고
엉덩이로 쓴다고들 한다
어릴때부터 주변으로부터
똑똑하다
머리가 좋다는 말을 들었고
대충해도 남들만큼은 하는
나를 경험하면서
진득함과는 거리를 두고 성장한
어른이 된 나를 바라본다
얕다
작은 일렁임에도 그 바닥이 보이는
얕은 호수처럼 깊이가 없다

남들처럼 진득하게
무언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시선이
갈 곳을 잃고 되돌아 왔을때 만났던 것은
세상에 대한 절망으로 웅크린
시인의 감성이었다
나는 시를 섰고, 시집도 한 권
내었으나,
천성처럼 지루해졌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문학은 슬픔의 축적이지
즐거움의 축적은 아니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진득함을 잃어버린 시인의 감성은
슬픔에도 흥미를 잃어버렸나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의 이면을 찾고 싶었던
시인의 감성과
더불어 독자의 세계까지
확장하고픈 욕념은
어린시절
주변의 관심을 갈구하던
어리광적 몸짓의
어른형 변형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래간만에
시작을 하는데
그럴듯한 말로
시작해보자

도시의 삭막함 속에
비와 바람이 지나가고
그것들이 흩뿌려 놓은
짙은 안개가 시야를 덮을 때
고즈넉한 산사의 고요를
어구 속으로 데려와
게으른 시인의 감성을
선정으로 초대하고
어슬렁대며 살아온
나이테의 간격으로
파도쳐 퍼지게 하라

어느 게으른 시인이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